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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론] 월동준비를 충분히 하자

남국인 조지아주 일대에도 겨울 추위가 엄습하고 있다. 5년 만에 가장 추운 크리스마스 시즌이다. 낮 최고 기온도 주말 내내 영하의 날씨다. 한 주 정도 반짝 추위가 지나가면 다시 예년 수준으로 기온이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그나마 다행이다. 요즘 어려움을 겪는 이웃들도 있지만, 전반적인 생활 수준 향상으로 겨울나기가 한결 수월해진 것은 사실이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하더라도 일찌감치 월동준비를 해야 했다. 최근 미주지역에서 K-푸드의 하나로 부상하는 김치 담그기도 겨울을 나기 위한 방편 가운데 하나였다. 그렇지만 급격한 경기변동에 따른 경제 한파로 추운 겨울을 더 춥게 지내야 하는 현실이 닥쳤다. 아닌 게 아니라 최근 은퇴를 했다가 다시 일을 찾아 나서는 장년층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자영업을 하던 A씨는 몇 년 전 은퇴를 했다. 그동안 모아 놓은 재산과 각종 은퇴연금으로 충분히 노후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최근 다시 직업을 찾았다. 은퇴 후 생활자금이 당초 계획보다 더 필요해진 데다, 물가가 급등한 것이 주된 이유이다.   B씨도 최근 파트타임으로 일할 수 있는 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금리 인상과 경기 침체로 주식시장이 급락하자 가용자금이 묶인 것이다.   기업들의 상황도 그리 밝지는 않다. 이미 알려진 대로 구글, 아마존,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 이른바 빅테크 기업들은 구조조정에 나선 지 오래다. 대규모 해고통지를 하는가 하면 채용을 중단하는 곳도 속출하고 있다.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 공급망 붕괴 등 삼중고(三重苦)를 겪으면서 글로벌 경기가 얼어붙자 앞다퉈 긴축 경영에 돌입한 것이다.   자영업자들도 추위를 느끼기는 마찬가지다. 올 하반기 들어 매출이 격감하고 있다. 외견상 매출이 줄지 않은 곳도 있지만, 최근 가격 인상에 따른 착시현상이다. 이에 따라 시설 확충이나 투자는 언감생심이다. 금융기관에서 필요자금을 융자받으려 해도 높은 이자를 감당하기 어렵다. 아울러 금융 비용 상승 등으로 대출이 크게 위축, 금융 여건도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세계 경제가 침체 터널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내년에도 금융 시장과 실물 경제 모두 힘든 한 해가 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많다. 무엇보다 연방준비제도(Fed)의 고강도 통화 긴축으로 올해보다 글로벌 성장세가 더욱 둔화하여, 어려운 한 해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또한 올 한 해를 괴롭혔던 인플레이션도 정점을 지났지만, 여전히 하향 경직성을 보일 것으로 보인다. 과연 경제침체가 올 것인가? 결과는 신만이 알고 있다. 하지만 최악의 시나리오를 산정하고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때 한국 바둑계를 풍미했던 서봉수 9단은 “형세판단이 불리할 때는 한없이 참고 기다린다”고 술회한 적이 있다. 기업이든 가계이든 현금 흐름에 유의하면서, 공격보다 수비에 치중하는 것이 마땅하다. 불확실성 시대에는 변칙보다 정석이 우선이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이다. 지금부터라도 월동준비를 충분히 해 두자. 다행히 내년 경기가 예상외로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최근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경기 침체가 생각보다 힘들지도, 길지도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경제 한파를 생각보다 수월하게 넘길 수 있다.  권영일 / 애틀랜타 중앙일보 객원 논설위원중앙 시론 월동준비 경기 침체 글로벌 경기 겨울 추위

2022-12-25

[중앙 시론] 나는 법무부장관을 존경한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아니, 미국의 갈랑드 법무부 장관 말이다. 지금 미국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을 스파이법 위반이나 내란 음모죄로 기소해야 하는 가에 대해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국가 안위가 걸린 기밀 서류를 은닉했고 민주적 선거의 결과를 뒤집으려는 시도를 했기 때문이다. 만약 연방 대배심이 기소를 결정한다면 의도하지 않게 트럼프의 피해자 코스프레를 돕거나 정치 내전이 벌어지는 등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붕괴되어가는 미국 공화국의 제도적 기반을 지키기 위해 트럼프를 기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시작의 끝이 어디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그가 오직 공정한 법의 적용이라는 법치주의 가치에 따라 일관되게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누가 자유민주주의의 진정한 힘이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갈랑드를 보라고 말하고 싶다.   한동훈 장관은 지난 미국 출장길에 아쉽게도 갈랑드 장관을 만나지 못했다. 만약 그를 만났다면 갈랑드 보유국과 아닌 국가의 국격의 차이를 뼈저리게 절감했으리라 생각한다. 한때 대한민국도 갈랑드 스타일의 법무부 장관들을 보유한 자랑스러운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민주당의 내로남불과 이를 창조적으로 계승하고 있는 국민의 힘 덕분에 대한민국은 갈랑드 보유국을 부러워해야 하는 시대로 퇴행하고 있다. 그 차이는 어디에 있는가?   첫째, 갈랑드는 한동훈과 달리 언론에 자주 나와 온갖 분노와 조롱을 내뱉지 않는다. 왜냐하면 ‘복수는 나의 것’이 아니라 ‘법의 공정한 적용이 나의 것’이기 때문이다. 파이낸셜 타임즈(FT) 8월 17일자 기사에 따르면 그는 취임 직후 법무부 내부 회의에서 민주당을 위한 법과 공화당을 위한 법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의 언어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는 평생에 걸쳐 내로남불과 싸워왔기 때문이다. 사실 그는 이미 오래 전부터 가장 대법관에 어울리는 인물 1순위이자 초당적 지지를 받아왔다. 하지만 공화당의 야비한 지도부는 어처구니없게도 293일간 대법관 인준 청문회 지연 음모를 꾸몄고 결국 그는 대법관에 오르지 못했다. 하지만 2020년 바이든의 당선으로 반전 드라마가 시작된다.   이제 법무부 장관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극적인 상황은 한국에서 흔한 복수극의 2막으로 보였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는 분노의 감정 대신에 합리적 논증과 신중함으로 오직 법의 공정한 적용에만 힘을 기울이고 있다. 미디어에서의 화려한 스펙터클 대신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마치 견고한 건축물의 벽돌을 차근차근 쌓듯이 증거를 신중히 탐색하고 축적하는 갈랑드의 일상은 지루하기까지 하다. 오죽하면 일부 진보파들이 왜 아직까지 트럼프를 처벌하지 않는 가 토로하며 강한 압박을 가할 정도였다.   둘째, 갈랑드는 한국의 그간 검찰의 일부 관행과 달리 별건 수사와 영장 남발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의 꽃인 ‘듀 프로세스’(적법한 절차)의 신중한 행사로 유명하다. 사실 그는 이번 트럼프 거주지 압수수색 이전에 다양한 절차들을 거쳤다. 국가기록원의 자료 반환 요청에 이어 트럼프 측 변호사와의 협상 및 시민들로 구성된 연방 대배심의 소환장 요구 등 차근차근 절차를 밟아 갔다. 하지만 트럼프 진영이 거듭된 거짓말로 기밀 서류를 은닉하자 최후의 수단으로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다. 그는 이 압수수색 후 발표한 성명에서 “모든 미국인은 법의 공정한 적용과 적법한 절차, 그리고 무죄 추정의 원칙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법무부 장관으로서 그의 흠잡을 데 없는 미 연방수사국(FBI) 지휘 과정은 심지어 트럼프 지배 정당 내에서 조차 내부 분열을 만들어 내고 있다.   미국의 민주당은 주변에 갈랑드와 같은 가치와 인격을 가진 이들을 전국에 걸쳐 무수히 보유하고 있다. 제 2, 제 3의 갈랑드가 있는 한 미국의 민주주의는 비틀거리면서도 붕괴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트럼프 기간에 ‘트핵관’(트럼프 핵심 관계자)인 윌리암 바 법무부장관 등이 온갖 공작으로 법무부와 FBI를 정치적 도구로 타락시키려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한국의 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당들도 신뢰를 복원해 집권하고 싶으면 해법은 간단하다. 근사하게 보이는 강령 만들기 이전에 기본을 우선 충실히 지키면 된다. 가치와 인사에서 누가 보더라도 공정한가? 시민들로부터 신뢰자본이 축적되어 가는가? 한동훈 장관과 내로남불, 법치주의 논쟁에서 승리할 공평함과 내공을 가진 이들이 도처에 있는가? 우선 이것부터 축적해 놓고 권력을 달라고 했으면 좋겠다.   아마 당분간 갈랑드 장관은 한동훈 장관이나 의원들이 다시 방미해도 만나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대신에 갈랑드의 법치주의 가치를 정확히 공유하고 있는 프릿 바라라 전 뉴욕 남부 연방지검 검사장 인터뷰는 어떨까? 그는 한국에도 번역된 책, 『정의는 어떻게 실현되는가』에서 이렇게 일갈한다.   “절차상 허용된 권한을 무조건 최대로 행사하는 리더는 독재자가 될 것이다.” 안병진 /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중앙 시론 법무부장관 존경 법무부 장관들 한동훈 장관 한동훈 법무부

2022-08-30

[시론] 평창 이후가 중요하다

평창동계올림픽이 종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한국의 메달 수보다는 올림픽 후의 남북관계가 어떻게 변화될까 하는 염려가 무거운 마음으로 다가온다. 한국과 북한은 평창올림픽에 각기 꽃놀이패를 쥐고 한반도기를 앞세워 해빙무드를 조성하고 있다. 하지만 평창올림픽 개막식 전날 북한의 건군절 열병식에 참여한 각종 화력을 보면 핵보유를 기정사실화한 ICBM을 앞세운 꼼수였음을 알 수 있다. 지난 10일 김정은 특사 자격으로 남한에 온 김여정은 청와대에서 김정은의 친서를 전하며 "빠른 시일 안에 만날 용의가 있다"는 초청 의사를 구두로 문 대통령에게 전달한 것도 올림픽 후의 잘 계산된 꼼수의 연장전임이 틀림없다. 문 대통령이 즉답보다는 "앞으로 여건을 만들어 성사시켜 나가자"고 답했다는 사실에 그나마 안도감을 갖는다. 청와대 관계자도 여건에 대해 "10년 만의 남북정상회담이 남북관계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의미 있게 이뤄지려면 한반도를 둘러싼 환경과 분위기, 여건이 무르익어야 한다는 생각이 담겨 있다"고 설명한 것이 진실이길 바란다. 문재인 정부는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조성된 남북대화 모멘텀을 이어가기 위해 정상회담을 반기면서도 비핵화를 앞세운 한미일 관계를 뛰어넘기에 장애가 있음을 밝혔다고 믿어본다. 사실 북한의 올림픽 참가는 핵 포기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핵을 지키려는 위장평화공세 전술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미국이 문재인 정부의 강력한 주장으로 애초 2월 말 실시하려던 키리졸브 연습과 독수리 훈련을 올림픽 이후로 연기했다. 문 대통령은 더 나아가 한미 군사훈련을 더 미루려는 속내가 내비쳤다. 아베 일본 총리가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연기할 단계가 아니다. 군사훈련은 예정대로 진행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 데 대해 문 대통령은 "아베 총리의 말씀은 북한의 비핵화가 진전될 때까지 한미 군사훈련을 연기하지 말라는 말로 이해한다. 그러나 이 문제는 우리 주권의 문제고, 내정에 관한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그렇다면 일본을 놔두고라도 북한이 핵탄두를 장착한 ICBM으로 미국을 공격하겠다고 하는 것은 어떻게 해석되어져야 하는가. 미국이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방어하기위한 선제공격은 미국의 주권문제이고 내정 문제가 아닌가. 문재인 정부는 미국의 선제공격에 반론을 제기할 명분이 없어진다. 만일 남북대화 모멘텀을 이유로 한미 군사훈련을 또다시 미룰 경우, 미국 측의 반응은 더욱 냉랭해질 것이 분명하며 어떤 행동으로 나올지 불분명하다. 현실은 김정은이 핵·미사일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과 미국은 북한의 핵·미사일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정은이 평창올림픽에 참가한 것은 미국의 예봉을 피해 보려는 꽃놀이패였음 알게 한다. 그러나 평창올림픽 후엔 김정은 핵 놀음의 꼼수도 트럼프의 강경 대응으로 이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미국이 대북 최대압박과 함께 군사 옵션도 테이블 위에 올라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지금은 평창올림픽 후를 보고 미국과 지속적인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박철웅 / 일사회 회장

2018-02-21

[시론] 미국은 대국인가 소국인가

미국 헌법의 기초자 중 한 사람인 제임스 윌슨은 이런 말을 했다. "로마인은 자국의 힘을 확장하려 한 것이 아니라 세계의 주민들이 자진해서 로마로 쏟아져 들어옴으로써 확장된 것이다." 로마가 뻗어날 수 있었던 비결이 관용이라는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 여사가 쓴 역사서 '로마인 이야기'를 읽다 보면 15권을 관통하며 등장하는 단어도 개방성과 관용 정신이다. 고대 로마는 다신교 사회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통합한 모든 이민족의 신을 자신의 신으로 받아들였으며 어느 특정 신만을 위한 신전이 아닌 만신의 판테온을 지었다. 수많은 이민족과 싸웠지만 그들의 종교와 사상과는 싸우지 않았으며 승자로서 우월감에 도취되어 타민족의 문화를 말살하지 않았다. 미국이 한때 그 팍스로마나 정신을 이어가는 문화적 강국이 되는 듯했었다. 건국 초기부터 지켜온 소수자들에 대한 관용과 개방은 그들이 유럽 대륙에서 경험한 불관용에 대한 성찰에서 온 것이었다. 그리하여 군사력을 앞세운 폭력적 확장에도 불구하고 인종적 소수자, 종교적 소수자들에게의 관용은 미국을 세계에서 모범적인 지도국으로 세우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많은 한인들이 미국을 동경하며 이민을 떠나오던 60년대, 70년대만 해도 미국은 그런 나라였다. 그러나 상대적 박탈감에 숨죽이고 있던 백인 중산층들이 9·11 테러에 이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부르짖는 맹목적 애국주의에 편승하면서 미국이 점차 편협하고 오만한 나라로 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관용과 개방의 정신을 잃어버린 초강대국의 비틀거림은 세계의 재앙이다. 다카 법안이 의회에서 부결돼 지금 180만 명에 달하는 미국 내 불법체류 청년, 일명 드리머들이 추방 위기에 내몰렸다. 쇄국주의의 상징인 듯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쌓고 가족초청 이민을 사실상 폐지하려는 반 이민 정책으로 미국의 지성은 극도의 혼돈과 분노에 쌓여있다. 전 세계를 상대로 무역 전쟁을 선포한 미국 상무부는 특별히 한국산 세탁기와 태양광 모듈에 대해 긴급 수입제한 조치를 발동했다. 또한 철강 제품에 대해서 53%의 높은 관세 부과를 제안하고 GM의 철수를 공언하는 등 한국을 겨냥한 무역규제가 본격화되고 있음을 예고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 분야에서만은 한국이 미국의 동맹이 아니라고 말한다. 한국에서는 한미동맹이라면 어떤 가치보다 우선시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동맹이 아니라니. 그러면 미국은 군사, 외교 면에서는 동맹으로서의 금도를 보이고 있는 것인가. 트럼프가 한국에 대해 경제적으로 압박하는 그 모습은 바로 며칠 전 한국에 가서 올림픽 리셉션에 뒤늦게 참석했다가 용렬한 모습만 보이고 떠난 펜스 부통령과 다르지가 않다. 내심 한반도에 긴장 상태가 고조되기만을 바라는 섬나라 소국 아베의 협량은 그렇다 치고, 동맹국의 잔칫집에 가서 그렇게 화해 분위기를 흐려 놓고 오는 것은 백 보를 양보해도 예의가 아니다. 더구나 무안한 마음에 경제 보복 카드를 꺼냈다면 미국이야말로 동맹이랄 수가 없다. 공자는 대인(大人)과 소인(小人)을 구분할 때 대인은 옳고 그름을 따지며 소인은 이익을 따진다고 했다. 대인은 강자에게 강하나 소인은 약자에게 강하며, 대인은 대화로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만 소인은 주먹질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고 했다. 미국은 대국(大國)인가, 소국(小國)인가. 우리 200만 한인이 살고 있으며 한국과 둘도 없는 동맹인 미국이 결코 소국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 다만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이기보다는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나라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김용현 / 언론인

2018-02-20

[시론] 북한 실상 알고 대화해야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기이하고 비밀스러운 전체주의 국가다. 북한을 다룬 책은 늘 관심의 대상이다. 북한발 '핵풍'을 계기로 북한이란 전혀 다른 세상을 보여주는 책들 속으로 들어가 보자. 1990년대 말 대기근이 북한을 덮치면서 수백만 주민이 아사했고 수천 명이 북한 땅을 탈출했다. 탈북소녀 박연미가 쓴 수기 '내가 본 것을 당신이 알게 됐으면'은 그 끔찍한 시절을 고발하는 대표작이다. 담배 밀수꾼 아버지를 둔 연미는 어린 시절 북한 정권을 열렬히 숭배했다. 태어났을 때부터 평양 당국의 김일성 찬양과 반미 선전에 세뇌됐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배우는 수학 문제조차 이런 식이었다. "내가 미제 승냥이놈 한 명을 죽이고 인민군 동료가 미제 놈 두 명을 죽였다면, 미제 놈은 모두 몇 명이 죽었는가?" 그런데 은밀히 유포된 영화 '타이타닉' 해적판이 그의 생각을 바꾸었다. 북한 라디오는 채널 설정 기능이 없는 먹통이다. 북한 국영 채널만 청취할 수 있다. 그러나 암시장이 있었다. 라디오를 업자에게 주면 주파수를 조작해 중국 방송을 들을 수 있게 해줬다. 한국 드라마로 꽉 찬 USB도 쉽게 구입할 수 있었다. 나는 서방이 북한에 더 많은 문화 콘텐트를 유포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북한 주민들 마음에 정권에 대한 불만을 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박연미가 그랬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이 사랑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 걸 봤다. 정권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우리와 달랐다.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선택하는 모습에 매료됐다. 할리우드 영화 해적판을 통해 생전 처음 자유라는 걸 맛보았다." 그 뒤 아버지가 밀수 혐의로 체포되며 박연미 집안은 풍비박산됐다. 연미는 벌레와 잡초를 먹으며 버텼다. 13세 때 어머니와 함께 중국으로 탈북했다. 그러나 곧바로 인신매매단 손에 넘어가 모녀가 모두 강간을 당했다. 매매단의 손아귀를 피해 도망간들 중국 공안이 체포해 북한 수용소로 강제 송환시키는 터라 절망에 빠졌다. 다행히 모녀는 운이 좋았다. 간신히 몽골로 탈주해 한국으로 넘어갔다. 다른 인상적인 책으로는 탈북자 이현서가 쓴 '7개의 이름을 가진 소녀: 어느 탈북자의 이야기'가 있다. 혜산에 살던 이현서는 다른 북한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김씨 왕조를 신으로 모시도록 세뇌당했다. 밥을 먹을 때면 '위대한 수령님'에게 감사 기도를 올린 뒤에야 젓가락을 들 수 있었다. 이현서의 교사들은 틈만 나면 미국이 사악하다고 말했다. 미국 언론인 신분으로 북한을 방문해서 아이들과 이야기라도 나눠보려 했던 내 시도가 왜 먹히지 않았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이현서는 17세 때 중국으로 도망쳐 상하이에서 지냈다. 하루는 어머니가 북한에서 전화를 걸어와 "얼음(마약)이 좀 있는데 중국에서 팔 수 있게 도와 달라"고 말했다. 이현서는 "북한에선 법이 뒤집혀 있다. 부패와 불신이 만연해 주민들은 생존을 위해 법을 어겨야 한다"고 썼다. 북한은 어쩌다 이렇게 세계에서 가장 괴상한 국가가 됐을까? 궁금하면 브래들리 마틴의 저서 '지도자의 애정 어린 보살핌 속에서'를 읽어보라. 책에서 마틴은 비주류 항일 투쟁가였던 김일성이 어떻게 소련을 등에 업고 북한의 유일 권력자가 됐는지 설명한다. 그는 김일성의 아버지가 기독교인이자 교회 오르간 연주자였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김일성 자신도 한 동안 교회에 다녔다. 그러나 결국에는 교회를 떠난 뒤 모든 종교를 금지하고 자신을 신의 반열에 올렸다. 무신론자가 스스로를 신격화하다니 얄궂지 않은가. 궁금한 건 북한 주민들이 '위대한 수령'이란 종교를 정말 진짜로 믿느냐는 거다. 탈북자들의 수기를 읽다 보면, 많은 북한 주민이 실제로 수령을 신으로 믿고 철두철미한 반미 의식으로 무장한 듯하다. 평양 당국이 뻔뻔한 선전 공작을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실은 미국은 북한에 인도주의적 지원을 가장 많은 해온 나라다. 그래서 북한 주민들이 '피해망상에 빠진 국수적 인종주의'에 사로잡혀 있다는 분석도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조선 민족은 끊임없이 외세의 침략에 시달리면서도 정체성을 지킨 가장 깨끗한 인종"이란 괴상한 생각이 그것이다. 북한에 대한 이런 동정적인 시각이 궁금하다면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교수의 책을 보면 된다. 그는 저서 '한국 현대사'에서 북한이 한국식 국수주의를 어느 정도는 진실하게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분단의 가장 큰 책임은 미국에 있다는 등 말도 안 되는 주장도 하지만, 읽어볼 가치는 있다. 다만 고혈압 증상이 있다면, 읽기 전 의사와 상담해 보길 권한다. 원문은 중앙일보 전재계약 뉴욕타임스 신디케이트 1일 게재 니콜라스 크리스토프 / NYT 컬럼니스트

2018-01-08

[시론] '시끄러운 중도'가 필요하다

우리는 진보정권과 보수정권이 각각 두 차례 연이어 집권을 했었다. 집권당이 대략 한 번은 더 대선에서 승리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이례적인 일이 발생하면 5년 만에도 바뀌겠지만 대과(大過)만 없으면 그렇다. 미국하고 비슷하게 가고 있다. 우리 정치가 미국 정치를 닮아가는 것은 어쩌면 '사대주의' 때문이다. '사대주의'를 현대화시켜 '친패권주의'라고 불러도 되겠다. 물론 국가 주권이 중요하다. 제대로 된 나라라면 패권은 극복 대상이다. 사대주의·친패권주의가 반드시 항상 나쁜 것은 아니다. 한·미 양국 정치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데자뷔(deja-vu)를 느끼게 한다. '샤이(shy) 트럼프'에 이어 '샤이 홍준표' '샤이 안철수' 얘기가 나왔다. 침묵하는 다수(silent majority)가 침묵하는 유권자로 진화한 것이다. 미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 탄핵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양국 정치가 직면하고 있는 보다 구조적인 문제는 '정치 양극화'다. 우리 매체 기사들에 달린 댓글을 보면 '저쪽 찍는 집안과는 절대 사돈 안 맺는다'는 말까지 나온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샨토 아이옌거 스탠퍼드 정치학과 교수는 '공화당·민주당 며느리·사위는 집안에 들이는 게 싫다'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학계와 매체들은 흔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미국을 거대한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대로 만든 주범으로 지목한다. '제2의 트럼프'나 '한국판 트럼프'는 나올 수도 있고 안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정치 양극화는 한·미 양국에서 구조적인 문제가 됐다. 정치 양극화의 결과로 미국 공화·민주 양당 내부의 중도파는 씨가 말랐다. 미 하원의원을 선출하는 435곳 선거구 중에서 양당 후보 모두 승산이 있는 접전 지역은 72개 선거구로 줄었다. 정치 양극화의 해법은 간단할 수도 있다. 롭 밀러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교수는 감정이입과 상대방에 대한 존중으로 정치 양극화를 완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선 끝나고 나니 페친 끊겼다'는 말이 이번이 아니라 2012년 선거에서 이미 나왔다. 이번 대선에서도 같은 체험을 한 SNS 사용자가 많을 것이다. 편식과 마찬가지로 '유유상종 SNS 생활'은 결코 좋지 않다. 구조적인 차원에서는 양극을 삼극으로 복원해야 한다. 중도파는 중도좌파·중도파·중도우파의 공통분모다. 각 정당에 중도가 많아야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가능하다. 정치인들에게 선거 당선은 생명과도 같다. 강경파가 되는 게 당선에 유리하니까 강경파가 된다. '막말'이 정치생명 연장에 도움이 되니까 '막말'을 한다. 저쪽 욕을 먹어도 대세에 지장 없다. 지지자들이 환호한다. 온건·중도파가 되는 것은 정치적 자살 행위다. '가는 말이 험해야 오는 말이 곱다'가 농담이 아니라 생존의 비결이 된 것은 아닐까. 한국이나 미국이나 '정치적 목소리 총량의 법칙' 같는 게 있는지 모르겠다. 양극 강경파들의 목소리가 충분히 시끄럽기에 밀려난 중도파들은 조용하다. SNS 공간에서도 치우치지 않는 목소리를 내는 중도파 댓글러는 소수다. 학자들은 중도파의 정치 무관심과 침묵도 정치 양극화에 일조한다고 주장한다. 한 가지 반전이 있다. 미국에서 다른 당 찍는 며느리·사위가 집안에 들어오는 게 꺼려진다는 응답자는, 민주당 지지자의 경우 15%, 공화당 지지자는 17%다. 정치 양극화가 회생불능 수준은 아닌 것이다. 언론이나 학계나 과장하는 성향이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좀 더 시끄러운 중도다. 선거 때마다 투표하라고 모든 정파 사람들이 이야기한다. 선거와 선거 사이에도 중도의 목소리가 시끄러워야 사회가 활력 있고 건강해질 것이다.

2017-05-21

[시론]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중국

중국에 대한 오해는 대단히 많지만, 특히 중국의 고속성장은 중국을 과대평가하는 핵심 요인이었다. 연평균 10%를 넘는 경제성장이 지속되자 2020년, 늦어도 2030년까지는 경제 규모 면에서 중국이 미국을 앞설 것이라는 예측이 한국에 퍼졌다. 그러나 그토록 중국 경제의 우월성을 강조하던 전문가들도 2015년께부터는 자신의 주장을 슬그머니 접었다. 중국 경제의 고성장이 끝난 사실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중국 경제가 이행기(transition)에 있다는 것이 설명의 전부였다. 이행기를 지나면 중국 경제는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구조적으로 반등은 불가능하다. 다소 복잡한 설명이 필요하지만 중국 경제 전체가 생산성 저하현상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보는 주요 이유다. 중국 경제의 우월성을 굳게 믿고 있던 2005년께 이미 상황은 악화되기 시작했다. 자본의 한계 효율 저하, 즉 2005년에는 100을 투자하면 국내총생산(GDP) 역시 100만큼 늘어났지만 지금은 그 수치가 25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성장을 위해서는 과거보다 더 많은 자본이 투입돼야 함을 알 수 있다. 지난 10년 동안 중국 기업의 부채가 급속히 늘어난 이유 역시 설명이 된다. 지난해 중국 정부는 경제성장률이 6.7%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서구 전문가 중 이를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2013년 중반 이후 2016년 후반기까지 중국 GDP는 24% 팽창했다. 하지만 경제구조상 수치가 비슷해야 할 중국 상장기업의 매출은 13% 정도 늘어나는 데 그쳤다. 정치와 경제의 속성 차이를 간과한 것도 중국에 대한 오해의 또 다른 원인이었다. 중국을 통해 북한을 움직일 수 있다는 착각은 대표적인 사례다. 92년 중국은 북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수교했다. 덩샤오핑(鄧小平) 특유의 실리정책, 즉 정치 및 군사 분야는 북한을 통해, 경제는 한국을 활용해 중국의 실리를 극대화한다는 정경분리 원칙이었다. 중국은 현재까지 이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 모른 척하는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반대로 긴밀한 경제협력을 디딤돌로 중국을 통해 북한을 움직일 수 있다는 생각이 언제부턴가 한국인의 마음에 자리 잡았다. 그런 목적을 위해서는 중국과 이해가 다른 동맹국인 미국과 멀어지는 것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겼다. 박근혜 정부 초기 3년은 위의 생각이 구체화된 시기였다.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당시 박 대통령은 중국의 군사 퍼레이드를 보기 위해 천안문 망루에 올랐다. 얼마 안 가 북한은 또 핵실험을 했고, 대응책을 요구하자 중국은 모른 척했다. 여기서 중국은 덩샤오핑의 정경분리 원칙을 고수한 반면 한국은 반대로 행동했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카(E.H. Carr)가 30년대 처음 주장한 뒤 오랜 논쟁을 통해 서로 차원이 다른 가치는 교환이 안 된다는 법칙이 확립된 바 있다. 우리가 경제적으로 중국과 아무리 가까워도 차원이 다른 중국의 군사 및 전략적 이해를 변화시킬 수는 없다. 한국은 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에 의한 지배, 주권 재민 등을 기본 가치로 발전했다. 반대로 공산주의 일당 독재, 권력 분립 부재와 법에 의한 지배 실종, 반쪽 시장경제 등이 우리와는 정반대인 중국의 불안정한 현주소다. 역사적으로 그런 국가는 내부의 모순을 외부로 표출하는 경향이 있다. 가치 중심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기에 일방적으로 힘을 과시한다는 뜻이다. 바로 이것이 조선시대와 현재의 차이점인데 중국이 자신의 가치를 강요하면 우리는 수용할 수 있을까? 모든 면에서 앞서 있는 우리로서는 어림없는 얘기다. 대만의 본토 통합 거부, 홍콩의 반복되는 민주화 시위 현상에 답은 이미 나와 있다. 늦었지만 사드 보복을 통해 한국인들이 현실을 자각했다면 불행 중 다행이 아닐까.

2017-04-23

[시론] 핵재앙 부를 대북 선제타격

한미동맹이 아무리 튼튼하다 할지라도 각국의 국가이익에 따라 행동하는 국제정치의 현실을 잘 이해 해야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미국의 대북 선제타격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미 정부의 새 외교안보팀들은 대북무력사용도 불사하겠다고 공개적으로 거론 하고 있어 심각하다. 실질적으로 미국이 대북 선제공격을 채택할지는 미지수다. 금년도 한미연합군사훈련은 사상 최대 규모로 실시한다고 하니 북한은 예상대로 중거리 탄도 미사일 북극성 2형 시험 발사(2.12)로 대응했다. 이러한 강 대 강 군사대치는 한반도 를 전쟁 위기로 몰아가고 있어 한반도 평화만들기 과정에서 독이다. 대북 '선제타격(preemptive strike)' 이나 '예방타격(preventive strike)' 은 실질적으로 우리 국익에 독이 될 것이다. 선제공격은 궁극적으로 전면전으로 확산될 위험이 존재하기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도 주한미군과 그들의 가족들과 미국시민들의 생명과 자산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핵심 이익이기 때문에 미국의 무력사용이 쉽지만은 않다. 우리 입장에선 우리 배달민족의 생존 때문에 대북 선제타격을 허용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요약하면 선제타격개념은 북한의 핵미사일 공격 징후가 있을 때 사전에 공격해 핵·미사일 공격 능력을 파괴하는 것인데 공격이 임박(imminent)하다고 할 경우 균형 원칙에 따라 선제타격을 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국제관습법상 허용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핵미사일 공격 징후의 정확한 판단이 핵심이다. 반면 예방타격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사전에 제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침략적 군사행위로 유엔헌장위반이므로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게 될 것이다. 이런 군사 행동으로 한미가 원하는 북핵, 미사일 위협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으며 오히려 한반도에서 핵전쟁을 유발할 위험이 있어 결코 좋은 정책선택은 아니다. 필자의 대북 선제공격 반대 이유는 3가지다. 첫째, 동북아의 중심에 놓여있는 한반도는 미·중·러·일 4강의 국가이익의 교차지역이다.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은 중국과 러시아의 국익을 손상하기 때문에 동북아 안보지형에 불안정을 가져오고 평화를 위태롭게 할 것이다. 둘째, 북한은 HEU(고농축우라늄) 758kg(핵무기약60개 제조)과 탄도미사일을 소유한 핵 보유국이기 때문에 선제공격을 하면 핵물질의 폭발에 따른 방사능 오염으로 한반도는 물론 주변 동북아가 심각한 위험에 놓이게 될 것이다. 대북 선제타격은 북한의 제2타격 능력을 모두 제거하지 못할 것이다. 현시점에서 미국의 선제타격이나 예방타격 모두 한반도에서 전면전으로 확대될 개연성이 높다. 셋째, 미국의 선제공격에 북한이 항복할 리 만무하고 오히려 이판사판 식으로 북한의 제2타격 능력을 동원한다면 한반도에서 핵전쟁의 위험으로 확산될 것이다. 더욱이 조· 중우호협조 및 호상원조조약에 따라 중국이 자동적으로 군사개입을 하게 될 개연성이 높다. 따라서 핵전쟁의 위험때문에 한국정부가 선제공격을 허용해선 안된다. 최근 한국의 외교·국방장관이 선제타격을 허용하는 듯한 발언을 해 유감이다. 우리 국민의 의사에 반하는 선제타격으론 절대로 북핵문제를 풀 수 없기에 우리는 남북 간 전략적 대화부터 시작해야 한다. 북한은 이젠 군사적 도발 행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 한반도 주변 관련국들은 동북아에서 모든 군사적 무력 시위를 자제하고 각국의 핵심 이익을 존중하면서 건설적인 전략적 대화와 상생·공영을 위한 평화만들기(Peacemaking)에 나서야 한다.

2017-02-26

[중앙 시론] 메디케어와 역 선택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보험에는 두 가지 논리가 숨어 있다.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와 역 선택(Adverse Selection)이라는 두 가지의 개념이다. 이 두 가지 논리는 인간의 심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그것을 잘못된 정책적 논리로 채택할 경우 정치적으로 거센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인에게도 익숙한 ‘도덕적 해이’는 쉽게 말하면, 보험에서 모든 것을 커버해주니 큰 리스크를 가지고 배팅을 해서 요행히 거금을 벌면 그 돈을 보너스로 챙기면 되고 아니면 보험사가 보상해준다는 논리다. 대표적인 사례가 은행이 파산했을 경우, 정부 예금보험공사가 개인 예금주에게 그들의 예금을 보상해주니 은행직원들은 예금주의 돈을 위험한 자산에 투자해서 이익이 나면 거액의 보너스를 챙기고 손실의 경우 정부가 보전해준다는 논리다. 따라서 'Too Big To Fail'은 있을 수 없다. 만약 정부가 그 금융기관을 구제금융으로 살려 준다면, 향후에도 금융기관 임직원들의 도덕적 해이를 막을 수 없다는 논리가 숨어 있다는 얘기다. 지난달 뉴욕 26지구 하원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했다는 보도다. 전통적인 보수색이 강한 공화당 텃밭에서 민주당이 승리했다. 물론 신문보도를 통해서 알고 있겠지만, 지금 노년층들이 누리고 있는 의료 복지 혜택인 메디케어를 수정해서 연방지출을 줄이겠다는 ‘공화당 폴 라이언 의원의 안’이 유권자들로부터 거센 역풍을 맞았다는 결론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쉽게 말하면, 건강보험 시장에는 '역 선택'이라는 논리가 작동한다는 의미다. 다시 말하면 지금 사기업인 어느 건강보험 회사가 ‘건강보험’이라는 특정 상품을 개발해서 판매 한다고 가정해보자. 이 회사는 자신이 만든 건강보험 상품이 많이 팔릴 것을 기대한다. 왜냐 하면 수익이 나야 직원봉급도 주고 사무실 렌트도 내고 사장도 한몫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다르다. 즉 병이 잘나지 않는 젊은이들이 이 상품을 많이 사주어야 하나, 그들보다 병이 날 확률이 많은 나이든 사람들만 이 상품을 산다는 현실이다. 이 결과 사기업인 보험회사 입장에서는 결국 원하지 않았든 노인들만 이 상품을 사므로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꺼꾸로 선택 즉 역선택'이 일어난 셈이다. 그러면 나이든 사람들을 방치해야 하는가. 아니다. 그들을 국가가 보살펴 주어야 한다. 이 것이 바로 미국인들이 자신의 복지 혜택을 법으로 정한 권리 즉 인타이틀먼트(Entitlement)를 말한다. 경제적 논리로 보면, 사기업인 건강보험 회사는 적자를 내지 않아야 하므로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그래서 1960년대 초 민주당이 만든 제도 메디케어와 빈곤 계층 특히 어린이들을 돌보아 주는 메디케이드라는 제도가 탄생한 이유다. 물론 이 제도가 세월이 지나면서 연방정부의 거대한 적자를 유발시킨 주범 중 하나로 낙인 찍혀 공화당의 ‘예산 적자 방지 테이블’에 올라 온 것 같고 급기야 폴 라이언의 아이디어는 하원을 통과했지만 상원의 벽에 부딪혀 좌절하고 말았다. 미국이 연방 예산 적자를 줄여야 한다는 양당의 의견이 일치하지만 그 방법론에서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간단한 산수인 수입이 있어야 세출이 있고 세입과 세출은 일치해야 적자가 발생하지 않는 간단한 산수다. 부시 정권 초 부자들에 대한 감세를 더 연장하자는 주장이 공화당의 주장이다. 즉 세수입을 늘리지 않고 지출 항목을 줄여 건전 재정을 이루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민주당은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서는 감세연기를 철폐하고 각종 보조금 지급을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세금에 관련된 얘기는 정말 동서고금을 통해 많다. 중국의 고사 '가렴주구(苛斂誅求, 세금을 너무 가혹하게 거두어들이고, 재물을 무리하게 빼앗음)'도 그만큼 세금에 대해 부정적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세금을 '훔쳐 가는 것'이 아니라 '사회 환원 한다'고 생각을 바꾸어 보면 어떨까.

2011-06-07

[중앙 시론] 멀티 트랙(Multi-Track) 외교

베트남 전쟁의 중요한 전환점은 1965년 4월 7일이다. 이날 린든 존슨 대통령은 볼티모어의 존스홉킨스 대학을 방문해 베트남 전쟁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이때 존슨은 깜짝 놀랄 제안을 한다. 호치민이 전쟁을 포기하면 당장 10억 달러를 인도차이나의 젖줄 메콩강 개발을 위해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의 ‘비핵개방 3000’과 ‘그랜드바긴’을 합친 것과 같은 개념이었다. 이어 자신의 개발안을 브리핑 하듯 설명해 나갔다. 먼저 식량을 증산하고 전력을 생산하며, 병원과 학교를 지어 삶의 질을 높이고 당장 필요한 생필품은 미국의 창고에 넘쳐나는 잉여물자로 해결하겠다고 했다. 존슨은 자신의 제안이 가져올 변화에 대한 확신으로 차있었다. 자신의 고향이 풍부한 전력 공급으로 변화된 모습을 회상했다. 시 구절과도 같은 감성적 언어로 그는 말했다. “전선(電線)이 하늘을 가로지르면서 우울한 밤과 차가운 겨울이 지배했던 땅에는 어두운 밤이 환하게 밝혀졌다. 부엌은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차고, 집안에는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는 베트남에도 이런 변화를 가져다주고 싶다면서 이렇게 고백했다. “매일 밤 잠에 들기 위해 등불을 끄기 전 스스로에게 묻는다. 과연 나는 이 땅의 모든 사람에게 평화와 희망을 가져다주기 위해 최선을 다 했는가라고.” 존슨은 연설을 마치고 한 측근에게 “호 그 노인네가 도저히 거부할 수 없을 것(Old Ho can't turn that down)”이라고 장담했다. 존슨의 예측은 빗나갔다. 호치민의 꿈은 베트남의 ‘개발’이 아니라 ‘해방’이었고, 메콩강 유역의 전력(電力) 공급이 아니라 적화(赤化)였다. 당연히 존슨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 한 해 호치민 통로를 따라 약 3만5000명이 남쪽의 전선에 투입된다. 존슨 정부는 일언지하에 청혼을 거절당한 사내처럼 칼바람 날리며 ‘획’돌아섰다. 개발이 아니면 파괴. 둘 중에 하나였다. 존슨은 당장 북폭을 확대했다. 네이팜탄으로 적진을 불태우고 고엽제로 식물을 말려 죽였다. 지상군도 대폭 늘렸다. 그 해 말 월남에는 18만명의 미군이 싸우고 있었다. 한국군도 2만명이나 되었다. 이렇게 베트남 전쟁의 비극은 깊어 갔다. 존슨이 팔을 걷어붙이고 개발을 돕겠다던 메콩강 유역은 최대의 베트콩 활동지역이 된다. 최근 북한이 남북간의 비밀 접촉 내용을 일방적으로 공개했다. 남측이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에 대해 알맹이 없는 사과의 뜻을 표시해줄 것을 요구하면서 “돈 봉투까지 거리낌 없이” 내 놓았다고 폭로했다. 사실여부를 떠나 북은 핵개발과 군사모험주의를 포기하면 잘 먹고 잘살게 해주겠다는 현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를 흙발로 짓밟은 것과 같다. 지금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는 앞의 존슨 경우처럼 강경노선을 고집할 수 있다. 무(無)대화, 고(高)긴장 상황을 유지하는 것이다. 반대로, 북을 절대 진정성을 갖고 일대일로 대화할 수 없는 상대로 간주하고 6자 회담과 같은 다자 협상테이블에서 만나는 것이다. 말썽 많은 이웃을 상대할 때는 혼자 보다는 여럿이 같이 만나는 것이 더 효과적인 것과 같은 이치이다. 돌출행동의 가능성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후자는 북이 원하는 바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에게는 북에 대한 양보로 비쳐 정치적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다자회담이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에 대한 한국정부의 입장 수정이 아님을 국민에게 진정을 갖고 설명하면 된다. 이미 미국은 대북식량지원을 고려 중이고, 6자 회담 특사 ‘성 김’을 주한 미국대사로 내정했다. 또 커트 캠벨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를 중국으로 보냈다. 6자 회담재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외교는 본래 멀티 트랙(Multi-Track)이어야 한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어야 성숙한 외교이다.

2011-06-06

[중앙 시론] 오바마 정부, 시간이 없다

공화당 성향의 유권자들조차 메디케어 민영화라는 꿈을 공유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공화당 텃밭인 뉴욕주 26선거구의 보궐선거에서 공화당 후보에게 패배를 안겨주었다. 뉴욕주의 반전은 얼마 전 경기도 분당 보궐선거의 반전만큼 뜻밖의 징후다. 문제는 지난 4월 중순께 하원을 통과한 폴 라이언 2011년 예산법안이었다.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은 재정위기를 강조하면서 공공서비스 삭감과 감세정책을 골자로 한 예산법안을 파죽지세로 밀어붙였다. 공화당 지지자들까지 발끈하게 만든 조항은 메디케어를 의료서비스구매권 제도(voucher system)로 전환한다는 것이었다. 노인층의 의료를 정부가 맡아 책임지는 게 아니라 상품권을 주고 각자 알아서 처지에 맞게 보험도 들고 치료도 받으라는 것이다. 상원 표결을 앞두고 법안 홍보에 나선 공화당 의원들에게 동네 노인들은 거칠게 항의했다. "내 메디케어에 손대지마!(Hands off my Medicare!)" 얄궂게도 공화당 의원들은 오마바 정부가 건보개혁을 추진할 때 공화당 내 과격파인 티파티 시위대원들로부터 들었던 바로 그 구호를 돌려받았다. 폴 라이언 2011년 예산법안에 대한 반발이 당내에서조차 거세지면서 공화당 온건파 상원의원들이 이탈했고 최근 상원 표결에서 예산안은 결국 부결되었다. 공화당이 자기 텃밭에서 겪은 패배와 상원의원 이탈은 다가오고 있는 태풍의 맛보기이다. 실업률은 도무지 떨어질 기미가 안 보이는 가운데, 이제 막 대학문을 나선 졸업생들은 청년 실업자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재학생들은 졸업 후를 걱정하고 아직은 직장을 가진 사람들도 미래가 불안하다. 오일과 식료품 가격 상승으로 가계가 위축되고 소비자 지수는 다시 바닥이다. 주택가격도 최저치를 새롭게 갱신했다 한다. 판이 이런데 공화당은 재정적자 해소를 내세워 학자금 보조, 영아 급식, 공립 교육 프로그램 등을 대폭 축소하고 메디케어마저도 민영화하여 공공 보장성을 약화시키려 했던 것이다. 더구나 균형예산을 한다면서 부시 정부의 감세 정책을 지속하여 극소수 부유층과 기업에 무려 3조 달러에 감세 혜택을 안겨주고자 했다. 소수 강자에게 이익을 챙겨주면서 중산층을 포함한 '기타 여러분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는 정책을, 심지어 공화당 성향의 유권자들마저도 용납하지 않았다. 공화당이 이처럼 자살골에 가까운 무리수를 두게 된 것은, 최근 티파티 같은 과격세력의 당내 진출로 심지어 레이건이나 아버지 부시가 대표하던 온건파의 입지마저 좁아진 탓이다. 과거의 과격파인 네오콘은 선제공격을 불사한 군사노선으로 미국의 패권을 회복시키려다 좌절했다. 오늘의 과격파인 티파티는 중산층과 빈곤층에 대해 노골적 계급전쟁을 시작했다가 첫 번째 실패를 맛보았다. 민주당은 공화당의 자살골로 덕을 좀 보기는 했다. 그러나 국가의 의제설정에서 오바마 정부와 민주당은 재정위기론을 앞세운 공화당의 공세에 밀리고 있었다. 연초 대통령은 국정연설에서 일자리 창출과 경제회복을 국가 최우선과제로 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달이 바뀌면서 슬그머니 재정위기 해소가 마치 국가 최우선과제인 것 같은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하원을 잃은 탓도 컷겠지만 아직도 백악관과 상원을 가진 민주당이 과감한 경제회복 대책을 내놓지 못한 탓도 있다. 최근 그리스, 영국, 스페인의 대규모 소요 사태는 오바마 정부가 더 미적거릴 시간이 없음을 경고하고 있다.

2011-06-02

[중앙 시론] 내 것이면 무조건 좋다(?)

자신이 직접 만든 것에 대한 애착이 높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것이 IKEA에서 산 책상을 조립했건 자신이 낸 아이디어를 기업이 채택했건 간에 자신이 스스로 만든 것에 대한 집착은 매우 크다. 그러나 문제는 자신이 만든 아이디어가 최초에는 기업 제품판매를 획기적으로 늘렸는지 모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세대가 바뀌고 새로운 취향을 가진 소비자 세대가 출현하는 것이 세상사 즉 기업을 둘러싸고 있는 외부환경이기에 성공으로 이끌었든 신화가 오히려 기업 경영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경영학에서 흔히 말하는 기업문화(Corporate Culture)는 일반적으로 기업들이 지닌 신념, 언어, 그리고 업무 프로세스와 그 결과 나타난 제품을 중심으로 기업문화가 형성된다고 학자들은 정의한다. 즉 개인이 개인의 특성에 따라 남과 차별화되듯이 기업도 경영자와 종업원들이 공유하는 가치에 따라 기업문화가 각기 다르다는 얘기다. 이 기업문화의 차이가 ‘경쟁에서 살아 남거나 실패하는 보이지 않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사례가 있다. 지금 일본 업체에서 그 사례를 한 번 찾아보자. 2차 대전 후 영원히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보이든 일본 전자업계의 대명사 소니가 이제는 침몰하고 있다. 그 동안 트랜지스터 라디오, 워크맨, 아날로그 시대 TV대명사였던 트리니트론을 만들어 대성공을 거두었든 소니가 32억 달러의 적자를 보였다는 보도다. 물론 지난 3월 일본의 대지진과 쓰나미로 타격은 많이 입었으리라 예상은 했지만 말이다. 그 동안 삼성전자, LG 등 한국 업체의 대대적인 기술혁신과 빠른 의사결정으로 소비자에게 다가가 일본의 신화를 무력화 시켰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 이에 설상가상 스티브 잡스의 애플 등장과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 게이츠 등장으로 소니는 이제 '이빨 빠진 늙은 호랑이'로 전락해 버렸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한마디로 결론을 내리면, “내 것이 최고다”라는 소니 스스로 만든 성공신화에 집착하고 편협한 내부직원의 의사만을 수용하는 기업문화에 그 원인을 찾아 볼 수 있다. 외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소니의 최고 경영자가 된 하워드 스트링거의 말을 빌려 보아도 이는 명약관화하다. 즉 소니의 엔지니어들은 “내 것이 최고다”라는 집착으로 인해 상당한 손해를 입었다는 그의 말이다. 사실 소니는 지나치게 자신이 최고다라는 신념의 울타리에 갇혀, 스티브 잡스의 아이팟이나 빌 게이츠의 X-박스 같은 차세대 제품을 개발 상품화 하지 못했다. 이는 대중화된 메모리 기기들과 호환성이 없는 디지털 카메라를 만든 카메라 회사들과 다를 바 없다는 얘기다. 소니는 플랫 TV시장에서 삼성전자에 더블스코어로 밀리는 수모를 겪고 있으며, MP3는 만들지도 못했다. 또한 소니가 만든 아이패드, 갤럭시탭과 같은 제품이 있다고 들어 본적이 있는가. 무선통신분야는 스웨덴의 에릭슨과 손잡고 만든 소니 에릭슨이 겨우 모바일 폰 시장에서 겨우 명맥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성공 신화는 오래가지 못한다. 스티브 잡스는 제록스 연구소에서 창조해낸 아이디어를 상품화 시켜 세계적인 기업으로 애플을 키웠다. 이와 같이 외부의 아이디어를 적극 수용하는 회사의 기업 문화는 ‘내 것이 최고”라는 소니와 기업문화가 아주 다르다. 한국의 기업들은 지금 일본의 틈새를 비집고 약진을 하고 있지만 우리가 쏜 성공신화가 언제나 소니처럼 실패의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지금 내부에 정착시킨 제도 예를 들면 핵심성과지표를 나타내는 KPI도 시시각각 변하는 시장의 변화를 읽어 내고 고객의 욕구를 정확히 반영해야 롱런할 수 있다는 얘기다.

2011-05-31

[중앙 시론] 김정일의 '센티멘털 저니'

'추억의 여행을 떠나려 해(Gonna take a Sentimental Journey)/ 마음에 평안을 주려고(Gonna set my heart at ease)/ 추억의 여행을 떠나야 해(Gonna make a Sentimental Journey)/ 옛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To renew old memories).// 가방도 챙겼고 차표도 예약 했어(Got my bags, got my reservations)/ 동전 한 닢까지 톡톡 털어서(Spent each dime I could afford)/ 끝없는 기대에 부푼 아이처럼(Like a child in wild anticipation)/ 자 출발! 나는 그 소리가 듣고파(I Long to hear that, All aboard!).' 1945년 발표 돼 크게 히트한 도리스 데이(Doris Day)의 ‘센티멘털 저니(Sentimental Journey)’의 1, 2절 노랫말이다.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기차를 이용해 장장 6000Km(약 3800마일)의 중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갔다. 그의 이번 방북은 ‘센티멘털 저니’ 그 자체였다. 북한과 중국간의 역사적 추억을 되새기는 여정이었다. 기차여행이란 방식 개념 자체부터 그렇다. 잘 알려진 대로 마오쩌둥(모택동)은 중국 내 여행에 열차를 이용했다. 마오의 여행에는 ‘일정’이란 개념이 없었다. 불면증에 시달렸던 마오를 실은 열차는 그가 잠에 들면 언제 어디서든 멈춰서야 했다. 그 때 해당 철로의 이용은 전면 중단되었다. 좀 과장해 중국의 철도 시간표는 불면증 환자 마오의 예측불허 취침시간과 밀접하게 연계돼 있었다. 마오의 열차행렬 때문에 수만의 인민이 한정 없이 발이 묶여야 했다. 중국 대륙을 그야말로 제집처럼 돌아다닌 김 위원장의 열차여행은 마오 시대에 뿌리를 둔 북·중 혈맹관계에 대한 추억이고 서비스이다. 김 위원장은 지금 이 추억에 북한의 미래를 걸고 있다. 국경을 넘은 그는 먼저 아버지 김일성 주석의 혁명 유적을 시찰했다. 중국과 북한의 혁명적으로 한 뿌리를 상기시킨 일정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틀 후 양저우에 나타난다. 양저우는 장쩌민(강택민) 전 국가주석의 고향. 1991년 장 주석과 김일성은 이 곳에서 만나 뱃놀이를 즐기면서 북·중 관계를 돈독히 한 바 있다. 이 둘에 대한 역사적 추억에 힘입어 김정일이 자신의 후계구도를 공고히 하려는 포석으로 보여진다. 김정일의 이번 ‘센티멘털 저니’의 효과는 더 두고 볼 일이나 기대만큼의 성과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먼저 중국의 “상호 이익이 되는 경협”의 확대 제안은 일단 민생측면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길 바라는 북한의 요구의 수용으로 보기는 어렵다. 또 3대 세습에 대한 중국의 지지입장에도 진일보한 면을 찾기는 어렵다. 북한의 생존은 ‘센티멘털 저니’로 해결될 일이 아닌 것이다. 앞에 언급한 ‘센티멘털 저니’의 목적지는 화려하고 넓은 밖의 세상이 아니라 바로 고향이다. 다음은 이 노래의 마지막 절이다. '내 마음이 이렇게 사무칠 줄 몰랐네(Never thought my heart could be so yearny)/ 왜 그렇게 방황을 했지?(Why did I decide to roam?)/ 추억의 여행을 떠나야 해(Gotta take that Sentimental Journey)/ 고향으로 가는 추억의 여행을(Sentimental Journey home).' 이 노랫말대로 북한이 살아갈 길은 우리민족의 삶의 터전 한반도 내에서 찾아야 한다. 밖으로 나다녀 봐야 뾰족한 수는 없다. 타민족의 원조와 지지로 일어선 나라와 민족은 없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이 이번 추억 여행에서 얻은 결론이기를 바란다.

2011-05-30

[중앙 시론] 훌륭한 지배구조

영국의 대학은 미국과는 달리 경제학을 단순히 경제학(Economics)이라 부르지 않는다.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ics)이라 부른다. 즉 미국은 정치와 경제를 분리하여 학문적으로 연구하는지 몰라도, 필자의 지식으로는 유럽은 정치학과 경제학을 따로 분리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는 분명 그 이유가 있을 것 같은 데 아직 정확히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다만 짐작할 수 밖에 없다. 분명 케인즈의 1936년 ‘화폐와 이자, 고용에 관한 일반이론’이 발표된 후부터 경제 주체 중 하나인 정부의 시장 내 부족한 유효수요 창출이론을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받아들여 대공황을 극복한 이후부터 정부의 시장개입이 일반화 된 역사적 사실이 있다. 과거에는 즉 아담 스미스 이후, 국가는 시장이라는 판을 벌리고 시장 참여자들이 자발적으로 경제행위를 하게끔 만들면 된다라는 믿음이 있었다. 다시 말하면 국가는 시장에서 반칙을 하는 시장 참여자에게 휘슬을 불고 벌칙만 가하면 되지 정부라는 빅브라더가 시장에 들어와 감내라 배내라 하면 안 된다는 사상 즉 자유방임 자본주의가 대세였다는 얘기다. 물론 지금도 그 이론을 신주 받들듯 받드는 사람들도 꽤 있다. 자! 지금 한 번 생각을 해보자. 인류의 최고 발명품인 민주주의라는 정치제도가 경제성장과 어떠한 상관관계가 있는지 한 번 알아보자는 얘기다. 이 주제는 오래 전부터 관심이 있는 경제학자들의 연구과목이었으나 아주 정치적으로 민감한 주제여서 섣불리 선택하기 어려웠든 주제였다. 그러나 지금 중국이 일본을 제치고 세계 제2위의 경제 대국으로 부상하자, 과연 중국은 지금의 일당 독재체제인 국가자본주의가 계속 인민들의 삶의 질을 높여 나갈 수 있을런지 즉 절대빈곤은 벗어났지만 경제 성장이 가능할 것인지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에 대한 대답을 한 번 찾아 보자는 얘기다. 지난 5월 16일 월스트릿저널에는 이에 관련된 분석기사가 하나 실렸다. 지배구조(Governance) 즉 정치제도가 경제성장, 다시 말해 가난을 물리치는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 막연한 짐작을 구체적인 자료를 분석하여 결론을 얻은 기사가 있었다. 자료에 따르면, 구매력 기준으로 한국은 일인당 2만7938달러의 소득을, 미국은 4만5934달러를 나타내고 있다. 가장 높은 나라는 유럽의 소국 룩셈부르크로 무려 7만9163달러다. 물론 이 세 나라의 지배 구조 즉 정치제도는 아주 훌륭하다는 분석이다. 즉 좋은 정치 제도가 지속적인 경제 성장이 가능하다는 결론이다. 반면 오일 대국인 러시아와 리비아는 각각 구매력 기준 1만4927달러와 1만3399달러를 보여 주지만 이들 나라의 지배구조는 '아주 나쁜 정치제도'를 갖고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은 국민소득이 6786달러이지만 '그저 그렇고 그런 정치 제도'를 지닌 나라로 분류되고 있다. 물론 쿠웨이트도 '그저 그렇고 그런 지배구조'를 지닌 나라지만 오일 덕으로 구매력 기준 3만7503불을 기록, 한국보다 높다. 일인당 국민소득이 1만5000달러 정도까지 도달하는 데는 과거의 구 소련이 채택했던 공산주의 내지 사회주의가 자본주의 보다 빨랐지만, '만리장성 같은 벽(The Great Wall)'을 넘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그 결과 1989년 이 체제는 붕괴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중국은 과연 일당 독재체제와 국가자본주의 체제로 이 만리장성을 넘을 수 있을까. 학자들은 부정적이다. 중국이 앞으로 10년 내지 15년 계속 경제 성장이 가능하겠지만, 이 만리장성 벽 근처에서 주저 앉으리라는 분석이다. 이 분석 기사를 읽어 보면 한국인의 기질이 정말 대단하다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 그것도 남북이 분단된 대한민국의 정치·경제 발전은 그야말로 이 지구상의 모범 사례인 기적이다. 오일 한 방울 나지 않는 한국은 이제 중화학 공업의 세계중심 기지가 되었다. 이게 누구의 덕일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라.

2011-05-24

[중앙 시론] 미국 상원이 주는 교훈

미국 헌법은 오늘날 인류공동체가 인정하는 민주주주의 상징이다. 유럽인들의 본격적 이민이 시작된 지 3세기만에 미국이 세계의 지도자로 부상할 수 있었던 근본 힘은 이 민주 헌법에 기초한 법치 전통이다. 하지만 이 빛나는 민주사회의 청사진에 아주 고약한 비민주적 독소조항이 심겨져 있다. 바로 연방 상원(Senate)이다. 미국의 헌법을 제정한 건국의 아버지들은 한 가지 심각한 아이러니를 해결해야 했다. 이들은 물론 민주사회를 원했다. 그러나 민중은 신뢰하지 않았다. 결론은 민중(유권자)의 요구는 지역의원(하원)들이 대변케 하고, 상원은 지역적 이해관계와 득실계산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미국의 장래를 구상토록 하는 이중구조를 만들었다. 그리고 상원의 역할을 보장하기 위해 비민주적 장치를 고안했다. 먼저 각 주는 2명의 상원의원을 워싱턴으로 보낸다. 이들은 1913년까지 유권자가 직접투표로 선출하지 않았다. 주 의회가 연방 상원을 선출했다. 또 상원은 임기가 6년이다. 재선에 대해 덜 민감하다. 상원의 힘은 막강하다. 연방정부의 주요 공직은 상원의 인준을 받아야 한다. 에드워드 케네디 의원이 상원의 이 전통을 가장 잘 대변했다. 케네디는 메사추세츠 출신이지만 그 지역 이익의 상징이 아니었다. 그의 영향력 덕분에 메사추세츠로 국가 기관이 옮겨가고 공항, 역사가 만들어졌다는 기록은 없다. 그는 미국사회 전체의 약자들을 대변했다. 저소득층, 이민자, 여성, 아동, 노년층을 보호하는데 앞장섰다. 그래서 그는 '상원의 사자 (Lion of the Senate)'로 불린 것이다. 상원의 중요성은 상원의원 경력을 가진 대통령의 숫자에서도 나타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포함해 43명의 미국 대통령 중 16명이 한때 상원의원이었다. 전후 만 따지면 12명의 대통령 중 상원출신이 5명이나 된다. 미 상원은 상징 인장까지도 독특하다. 대통령을 포함해 미국의 국가 기관의 상징은 날개를 활짝 편 독수리가 오른발에는 올리브 가지를, 왼발에는 화살을 움켜지고 있는 모습이다. 평화를 원하지만 전쟁을 피하지 않는다는 의지의 상징이다. 하지만 상원 인장의 중심에는 미국 국기 무늬의 방패가 있다. 그 양 옆으로 올리브 가지와 참나무(Oak) 줄기가 둘러싸고 있다. 상원은 이익집단의 요구에 흔들리지 않는 견고함으로 평화를 유지하고 나라를 지킨다는 의미이다. 한마디로 상원은 정치적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큰 정책적 그림을 그리는 곳이다. 상원이 제 구실을 못해 미국의 시련에 빠진 예는 많다. 베트남 전쟁이 그랬다. 1964년 8월 2월 존슨 대통령은 인도차이나의 통킹만(灣)에서 북베트남의 어뢰정들이 미 해군함정을 공격했다는 보고를 받는다. 이틀 뒤엔 또 다른 공격이 보고됐다. 정확한 사실 파악이 안 됐지만 존슨은 전쟁수행에 관한 의회의 그야말로 '백지수표'를 요구했다. 8월 7일. 사건 발생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의회는 통킹만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애국심으로 들끓는 지역 민심을 의식한 하원의원 전원이 찬성한 것은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상원이 심도 있는 토의를 포기하고 단 2명의 반대표로 통과 시킨 것은 오점이었다. 상원에서 더 많은 반대표가 나왔으면 존슨과 닉슨의 안하무인격 확전은 막을 수도 있었다는 분석은 설득력이 있다. 그 후 11년을 끈 베트남 전쟁이 남긴 정치, 경제, 정신적 후유증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지금 한국에서는 '지역 숙원사업'이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자 해당 의원들의 반발이 거세다. 분노한 지역 '민의'를 전달키 위해 삭발도 마다하지 않는다. 지역정서를 극복하고 나라 전체의 장기적 이익을 생각하는 상원을 고안한 '건국의 아버지'들이 슬기롭게 느껴진다.

2011-05-24

[중앙 시론] 거덜난 그리스

2010년 5월, 약 1년 전 유럽중앙은행(ECB)과 국제통과기금(IMF)으로부터 1100억 유로라는 거액의 구제금융을 받았든 그리스가 드디어 파산할 위기에 처했다. 지난 10일 미국의 신용평가사인 S&P는 현재 정크본드 등급인 그리스를 두 단계 강등시켜 싱글B로 만들고 만다. 게다가 유럽중앙은행 혹은 유럽국가들이 인위적으로 그리스 국채를 ‘리스트럭처링’ 해주면, 즉 원금을 갚을 수 없어 만기를 연장해주면, 그 국채는 자동적으로 ‘디폴트’라는 아주 보기 드문 ‘선별적 채무불이행’이라는 조항까지 발표한다. 시장의 우려대로 드디어 그리스는 파산하고 만다는 결론이다. 만약 그리스가 파산하면 그 여파는 유럽은행들의 줄 도산으로 이어지지 않을까라는 우려가 현실로 서서히 부상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 국채의 대부분을 유럽은행들, 특히 프랑스와 독일계은행과 스위스은행들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독일과 프랑스가 주도한 유로존이라는 유럽통합도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받겠지만 문제는 자국은행들의 파산을 어떻게 막아야 하는지가 발등의 불인 것 같다. 특히 지난주 유럽은행들의 주가가 폭락한 사실이 이를 반증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지난 30여 년간 부도난 국가를 한 번 기억해보자.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에콰도르 등 남미 국가와 러시아, 우크라이나, 파키스탄 등이 이미 국가 부도를 낸 나라이다. 물론 이들 나라는 발행한 국채의 원금과 이자를 갚을 수 없어, 채권 금융기관들은 원금과 이자를 탕감해주고 일부를 회수할 수 있었다. 특히 기억 나는 국채의 원금과 이자 탕감의 역사는 80년대 초반 미국 씨티뱅크가 남미 국가들의 채권 원금과 이자를 탕감해준 사실이다. 물론 그 당시 씨티뱅크는 ‘투자손실’을 재무제표에 반영하기까지 약 5년이라는 시간을 벌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전혀 반대다. 3년 전 전대미문의 금융위기를 겪은 유럽과 미국은 은행들의 자기자본 확충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들 은행들의 그리스 투자손실을 예외로 인정할 수 없다는 딜레마다. 쉽게 말하면 그리스 국채 투자 손실을 자기자본에서 손실로 떨어내고 자기자본을 자기자본비율(BIS) 기준에 맞게 확충해야 하는데 그 일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얘기다. 물론 국가부도를 낸 그리스는 이제 국제금융시장에 참여하기란 즉 채권을 발행하여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란 불가능하다. 투자가들이 그리스 채권을 거들떠 보지도 않을 것이라는 얘기고 누가 나서서 국채발행 주선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이다. 그러면 왜 이런 일이 벌어졌나. 돈을 빌려주는 채권자인 ECB와 IMF가 그리스에게 “이 돈을 빌려 준다. 그 대신 이런 이런 조건은 지켜라. 즉 올해 재정적자 규모를 GDP 대비 3% 이내로 줄이고 전력회사 등 국영기업을 매각해서 돈을 마련해 원금과 이자를 갚아라”고 했다. 그러나 그리스 정부는 공공노조의 파업과 연금자들의 시위로 그 조건을 실제로 시행하지 못했다. 그 결과 영악한 시장은 그리스가 유럽중앙은행과 국제기금통화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이라고 단정해 버렸다. 작년 5월 그리스가 구제금융을 받겠다고 선언했을 때 그리스 3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10%에 못 미치는 약 8%대였다. 그러나 지난 5월 4일 포르투갈이 구제금융을 받겠다고 선언하자, 그 수익률은 무려 세배에 달하는 23%였다. 즉 그리스 국채가격이 3배 폭락 했다는 의미다. 이제 그리스 문제는 유럽의 손을 떠난 것 같다. 유로존 붕괴를 막으려는 프랑스와 독일의 필사적인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돼 버렸다는 얘기다. 그리스 문제는 누가 대신해서 해결해줄 수 없다. 이제 그리스인들은 스스로 지은 업보를 감수 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그리스 사태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빚내서 소를 잡아먹고 나면 누가 그 소 값을 갚아야 하나. 복지란 주머니에 돈이 있을 때 자선냄비에 넣는 동전이 돼야 한다는 얘기다. ‘공짜점심(FREE LUNCH)과 무임승차(FREE RIDE)는 없다’라는 말이 그리스 사태를 통해서 배워야 할 교훈이다.

2011-05-17

[중앙 시론] 한계 상황과 박정희 시대

어제로 5·16 군사 쿠데타가 50주년을 맞았다. 때맞추어 고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 작업이 활발하다. 필자는 박정희 시대의 시종을 관통하는 개념은 한계 상황에 대한 대처라고 판단한다. 그에게는 주어진 한계 상황을 일정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얻을 수 있는 실리를 최대화 하는 능력이 있었다. 박정희 시대는 주권적 한계 상황 속에서 탄생했다. 한반도에서의 피할 수 없는 미국의 영향력을 말한다. 이 같은 한계 상황 때문에 5·16 혁명공약은 다소 어색하게 시작한다.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겠다고 나선 혁명세력이 아이러니컬하게도 현재의 국가 이념은 흔들지 않겠다는 연속성을 강조한다. 제일 먼저 등장하는 반공을 국시로 삼고 미국을 위시한 우방과의 유대를 강화하겠다는 선언은 백악관을 향한 호소였다. 박정희가 구상하고, 상당부분 현실로 이루어진 새로운 한국 사회의 모습은 제3항에서야 등장한다. 이런 한계 상황에서 국정을 시작한 박정희의 실리추구 정신은 세 가지 예에서 잘 나타난다. 첫째가 1963년 대통령 선거이다. 잘 알려진 대로 그는 민정이양을 늦추려 했다. 미국은 반발했다. 원조를 중단하겠다며 위협했다. 박정희는 이 한계 상황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선거에 임해 당선됐다. 그는 하루아침에 반란군 우두머리에서 나라 건설자(nation builder)로 바뀌었다. 합법성을 확보한 그는 미국에 대해 당당하게 그의 필생의 화두 '조국 근대화'에 필요한 지원을 요구했다. 잉여농산물을 넘어 기술, 재원, 시장을 요구할 수 있는 지위는 그가 한계 상황 속에서 택한 정면승부의 결과이다. 미국의 월남전 개입 또한 박정권이 당면한 한계 상황을 노출했다. 한국이 월남에서 미국을 돕지 않을 경우 일부 주한미군의 재배치를 고려할 것이라는 메시지가 린든 존슨 정부로부터 흘러나왔다. 역시 박정희는 이 상황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월남전에 관한한 존슨보다 전략적으로 더 큰 그림을 그렸다. 소위 한반도와 베트남의 공동 전선론이었다. 한반도에서 김일성을 제압해야 베트남에서 호치민도 물리칠 수 있다는 논리였다. 결국 미국 정부는 한국에 대한 군사원조를 계속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빠져 든다. 박정희가 가장 절실하게 한계 상황을 실감한 때는 1968년 초이다. 청와대 습격을 목표로 한 무장공비 침투사건과 미국의 정보수집선 푸에불로호의 나포사건이 연이어 발생한다. 박정희는 군사 대응을 준비했다. 미국이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또 다시 한계 상황에 봉착한 그는 응징을 포기하는 대신 그의 또 다른 집념 '국군 현대화'를 위한 지원을 받아 낸다. 이 당시 존슨이 참석한 백악관 안보회의의 비밀기록문에는 어쩌다 한국 같은 작은 나라에 미국 같이 큰 나라가 끌려 다니게 되었냐는 한 참석자의 자조가 그대로 담겨 있다. 한계 상황 속에서 박정희가 억척스럽게 실리를 챙겼다는 증거다. 박정희 시대의 종말은 그가 처한 한계 상황을 인정하지 않은 데서 비롯된다. 1976년 미국 대선. 무명의 지미 카터가 현직 대통령 제럴드 포드와 겨루어 승리한다. 카터의 승리는 시대적 변화요구의 표출이었다. 워터게이트로 압축되는 제왕적 대통령(imperial presidency)에 대한 종말요구였다. 닉슨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국가 공권력, 특히 정보기관을 이용한 정치적 조작술은 미국인들의 강한 반감을 유발시켰다. 자신이 이런 미국 사회의 시대적 변화를 상징한다고 믿었던 카터에게 장기집권, 정보정치, 군사대립으로 요약되는 박정희 정권은 혐오대상이었다. 박정희는 내정간섭을 외치며 반발했고, 긴장은 고조됐다. 이 상황은 결국 그의 암살로 끝났다. 한계 상황에 대한 대처는 박정희 시대의 흥망사를 푸는 열쇠인 것이다.

2011-05-17

[중앙 시론] 뭔가 바뀌고 있다

2년 전만 해도 파산한 미국의 자동차 빅3가 과연 생존이 가능할까 라는 의문을 미국인들뿐 아니라 전세계인들이 가지고 있었다. 오바마 정부의 구제금융 지원을 받고 뼈를 깎는 구조조정 끝에 포드, GM, 크라이슬러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 반면 지난 3월 11일 일본의 지진과 쓰나미 여파로 일본의 자동차 업체들은 하나같이 매출감소와 이익감소를 겪고 있지만 말이다. 물론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인생사이지만 지금 전개되고 있는 자동차 업계의 판도는 한편의 드라마다. 지난 월요일 발표한 크라이슬러의 1분기 실적은 2006년 이래 5년만에 최초로 1억1600만 달러의 이익을 창출했다는 보도다. 포드는 1분기에 26억 달러를, GM은 지난해 47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반면 일본의 도요타는 올 첫 분기에 37억 달러의 적자를 보일 것으로 시장은 예측하고 있고, 혼다와 닛산도 각각 10억 달러의 적자를 보일 것이라는 보도다. 이 틈새를 비집고 독일의 폭스바겐과 한국의 현대·기아차가 약진을 하고 있다. GM은 다시 세계 제1위의 자동차 생산업체 자리를 도요타로부터 탈환했다. 그러나 폭스바겐과 도요타의 추격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시장은 분석하고 있다. 사실 도요타는 일본 제조업의 성공 신화를 만들어 낸 상징이다. 그들만이 만들어 낸 JIT(Just-In-Time) 부품조달 방식은 ‘필요한 부품을 필요한 만큼 조달한다’는 '부품재고 최소화' 전략을 말한다. 유럽과 미국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 부품재고 비용을 줄이는 획기적인 방식인 JIT를 생산과정에 정착시켰다. 그 결과 일본은 미국과 유럽업체 보다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바로 이 방식 즉 도요타의 성공신화를 쓰게 만들었든 'Lean 방식'이 천재지변인 지진 앞에서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다시 말하면 2주 정도의 부품을 공급받고 있던 도요타 완성차 생산라인이 부품 공급 사슬이 붕괴되면서 생산을 중단할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반면 한국의 현대·기아차는 어떠한가. 현대는 도요타와는 달리 '수직 계열화'를 통한 부품조달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즉 안정적인 부품조달과 품질의 균등화를 위해 일본과는 달리 이 방식을 쓰고 있다. 현대모비스와 현대파워텍 같은 계열 부품업체들이 현대 완성차에 필요한 모든 부품을 안정적으로 생산 공급하고 있는 방식이다. 그 결과 현대는 99%의 부품을 한국 수직 계열 업체들로부터 공급받고 있다. 즉 이번의 일본 천재지변으로부터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얘기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을 위시한 세계유수 MBA에서 케이스 스터디 과목으로 선정된 이 도요타의 JIT방식이 현대가 채택하고 있는 수직 계열화 방식보다 단점이 더 많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3년전 글로벌 금융위기와 이번 일본의 지진으로 인한 부품 공급사슬 붕괴라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는 이 현대의 방식이 돋보인다는 얘기다. GM은 70%의 부품을 해외로 아웃소싱 하고 있다. 대부분을 일본 부품업체들로부터 공급받고 있다. 그러나 이번의 경험을 통해 일본이 지진으로부터 안전한 나라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부품조달 방식을 바꾸려고 하지만 아직까진 마땅한 대안이 없는 모양이다. 왜냐하면 이번 같은 천재지변에 대응하기 위해 부품재고를 늘리면 재고비용이 증가해 제품원가를 압박하게 되며, 또한 하나의 대안인 ‘부품업체 다변화’ 역시 규모의 경제를 통한 원가절감을 희생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질 수 밖에 없다. 결국 미국 업체들은 공동으로 미국 내 부품조달을 늘리든지 아니면 멕시코, 캐나다에서 부품을 조달 받는 대안을 강구해야 한다. 아니면 한국 등으로부터 부품공급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즉 북미지역의 부품은 나프타지역과 자국 내에서 조달 받고, 중국 등 아시아 지역 수출 부품은 한국 등에서 받을 수 밖에 없는 현실이 곧 전개될 것 같다는 결론이다.

2011-05-10

[중앙 시론] 아버지들을 향한 삼배(三拜)

아버지가 쓰러지셨다. '어버이 주일'을 하루 앞둔 토요일이었다. 지금 아버지는 '투병'과 퇴원을 위한 '투쟁'을 병행하고 있다. 정확히 말해 후자에 더욱 힘을 쏟고 계시다. 아버지의 투쟁은 병원 응급실 도착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아버지는 먼저 평소 다니는 가정의에게 가자고 했다. "주사 한 대면 된다"는 기대와 함께. 곧 대학 병원 응급실로 옮겨진 아버지에게 의사와 간호사는 몸 상태에 대한 여러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돌아온 답의 대부분은 "It's okay." 의료진은 이 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 한다. 무엇이 '오케이'냐는 반문에 대한 답도 역시 "It's okay"이다. 응급실에서의 검사가 끝나고 병실로 옮겨진 아버지는 지금 요주의, 골칫거리 환자 취급을 받고 있다. 병원에서 센서를 부착해 침대에서 일어나면 경고음이 울린다. 아버지가 속 썩이는 환자가 된 이유가 있다. 입원 첫날 저녁 아버지는 한 의사가 위로의 뜻으로 던진 "좋아질 것이다(You will be fine)"는 말을 의도적으로 확대 해석해 퇴원을 요구하고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스스로 링거 바늘도 떼어 냈다. 피가 흘렀다. 장난기 있는 한 간호사가 아버지에게 '탈옥자(Escapee)'라는 별명을 붙였다. 아버지는 지금 네 가지를 거부하고 있다. 효도랍시고 연결해 놓은 병실 전화와 텔레비전, 의료진이 낙상을 우려해 침대 바로 옆에 설치한 이동식 변기. 끝으로 자식들의 병간호이다. 전화를 받으면 주위에 위로 전화하라는 메시지가 되어 폐를 끼친다고 한다. 텔레비전은 "뭐 볼게 있냐"며 켜지도 않고 있다. 이미 여러 번 "쓸데없는데 돈을 썼다"고 야단을 맞은 터다. 이동식 변기 사용거부는 아버지의 '최후의 자존심'이자 동양인 정서의 표시인 것 같다. 그리고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좀 자야겠으니 제발 집으로 가라고 요구한다. 떠나는 나에게 눈감은 아버지는 "장례비는 만들어 놓았다"고 말한다. 이것이 어찌 내 아버지의 모습일 따름일까. 나는 병상의 아버지 통해 그 세대 우리 모두의 아버지를 만난다. 나의 아버지는 80대 중반이다. 일정(日政)과 해방과 전쟁의 혼돈을 살아 냈고, 그 후에는 '자다가 죽은 것 다음으로 바라는 것은 일하다 죽는 것'이라는 삶의 자세를 지켜 온 세대이다. 대통령이 ‘새벽종이 울렸네…너도 나도 일어나’란 노래를 만들기 전에 이미 새벽을 깨는 사람들이었다. 아버지는 70년대 중반 이민했다. 지금처럼 동포사회의 경제규모가 크지 않았다. 자영업도 많지 않았다. 흔한 말로 의사, 박사 아니면 모두가 장시간의 육체노동으로 생활을 꾸렸다. 한국과 다른 맞벌이 생활에서 오는 부부, 가정의 긴장관계도 참아 낸 세대이기도 하다. 이들에게 공동체 의식이 있었다. 교회, 성당, 사찰을 세우고 지었다. 신앙공동체가 곧 동포사회였다. 이 같은 발자취를 따지면 우리 아버지들은 미국을 세운 청교도들과 같다. 미국 역사에서 다른 이민 집단이 하지 못한 일이다. 그리고 미국 사회에 대해 고마워했다. "한국에 있었으면 너희들 무슨 수로 미국유학을 시켰겠느냐?"는 한마디보다 더 진정한 '아메리칸 드림'의 요약이 있을까? '푸드 스탬프'와 같은 생활보조 신청을 하지 않아 정부 기관에서 한국어 안내서를 따로 만들어 홍보를 해야 하는 우직함이 이 세대에게 있었다. 우리 아버지들의 당당하고 억척스런 삶은 연예인들의 소위 '동포 위문공연'이란 표현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이들은 결코 위로의 대상이 아니었다. 이 세대는 지금 인생의 황혼기에 있다. 아프다, 외롭다, 부족하다고 쉽게 말하지 않고 버텨 온 우리 아버지들에게 세 번 고개를 숙인다. 죄송하고 고마운 마음과 앞으로는 좀 나아지겠다는 또 되풀이되는 다짐의 뜻으로.

2011-05-09

[중앙 시론] 왕세손의 결혼

지난 금요일 지구인 20억 명이 지켜보고 전 영국인들이 열광하는 가운데 엘리자베스 여왕의 장손이자 비운의 왕세자비였던 다이애나의 아들 윌리엄이 평민 출신인 케이트와 웨스트민스트 사원에서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다. 둘 모두 29세의 동갑으로 영국 명문대학의 하나인 세인트 앤드루스 대학에서 만나 사랑을 꽃피운 지 10년만에 결실을 맺었다는 얘기다. 21세기인 아직도 영국은 왕이 존재한다. 물론 정치에는 전혀 간섭을 하지 않지만 자국민과 영연방의 상징적인 인물로 아직도 그 영향력이 적지 않다. 사실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오히려 왕실 운영을 위해 영국정부의 재정지원을 받고 있는 현 왕실을 없애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 엘리자베스 현 여왕의 아들과 딸들은 하나같이 스캔들로 얼룩져 영국의 타블로이드판 신문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 찰스 왕세자의 이혼, 그리고 이혼녀인 카밀라와 재혼 등으로 시작하는 왕실의 스캔들은 끝이 없다. 이번 결혼식 초대 인물의 면면을 보아도 현 여왕의 며느리들에 대한 증오를 읽어낼 수 있다. 예를 들면, 둘째 아들인 앤드류의 부인 퍼기는 아예 초대조차 받지 못했다. 물론 이혼했지만 말이다. 또한 재미있는 사실은 영국을 12년간 이끌었던 노동당 출신의 전임 수상 토니 블레어와 고든 브라운이 초대받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사실 2008년 월가 투자은행의 상징인 리만 브라더스만 파산한 것이 아니다. 영국도 대형 모기지은행이었던 ‘노던록’이라는 은행이 파산했고, 왕립 스코트은행이라는 이름을 지닌 RBS도 파산 직전 영국정부의 구제금융으로 겨우 살아난 은행이다. 다시 말하면, 미국 월가에서만 금융위기가 벌어진 것이 아니라 영국도 규모는 적지만 미국 못지 않게 자국 금융기관들을 정리했어야 했다. 바로 이 점이 엘리자베스 여왕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 않았나 하는 추측이 가능하다. 민주주의 국가이든 군주국이든 지도자는 인민들이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게 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12년간을 통치해온 노동당 정부가 전대미문의 경제재앙을 초래하는데 일조했다는 사실에 여왕의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는 얘기다. 자신의 뱃속에서 나온 자식들도 하나같이 자신의 기대를 저버리는 참담한 현실을 맛보았던 여왕은 물론 자신이 뽑지는 않았지만, 자기 자식들과는 달리 영국을 잘 이끌어 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떠했는가. 한편 현 연립정부의 수상인 보수당의 카메론과 그의 부인이 화면에 클로즈업된다. 그는 초대받았다. 보수당 연립정부는 지금 금융위기 이후 혹독한 긴축예산을 편성, 시행하고 있다. 복지수당은 줄이고 대학등록금은 올려 수많은 이들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지만 그는 소신 있게 밀어 부친다. 이 점이 여왕의 눈에 든 탓일까. 아니면 현직 수상을 배제할 수 없는 정치적 이유 때문일까. 지난주 발표한 영국의 경제성적표를 보면 그야말로 초라하다. 1/4분기 GDP 성장률이 불과 0.5%다. 이는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일시적인 재정적자를 무릅쓰더라도 확대 재정정책을 시행해 일자리를 늘리고 경제를 성장하게 만들어야 했지만 그의 정책기조는 그와 정반대다. 그의 믿음인 긴축재정 정책이 언제 빛을 발할 수 있을까. 즉 재정적자도 줄고, 실업률도 줄고, 또한 경제가 성장하는 현실이 언제 나타날까(?). 과연 이 세 마리의 토끼를 한번에 잡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는 얘기다. 경제를 포함한 모든 세상사는 트레이드 오프 관계다. 쉽게 말하면,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는 사실이고 물 좋고 경치 좋은 정자는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 정책 내지 정치는 우선순위의 선택이고 대국민 설득이 필요하다. 윌리엄 왕자는 그의 어머니를 닮아 수줍음이 많지만 용모가 수려하다. 그의 부인 케이트도 물론 수려한 용모를 지닌 미녀다. 19세의 나이에 12살 연상의 찰스 왕세자와 결혼했던 고졸의 다이애나와는 달리 대학까지 졸업하고, 서른 살의 나이에 평민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정통 영국왕실의 핵심멤버가 되었다. 즉 차기 영국 국왕의 왕비가 된다는 얘기다. 이 두 젊은 캠브리지 공작 부부는 새로운 세대로 미래의 영국과 영연방을 끌고 갈 훌륭한 지도자가 될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2011-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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